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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글(최영미 주부가 발로 뛰어 취재한 미국 미시간주 스팔탄 초등학교)
작성자 사무국장 작성일 2012-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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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0,074
온가족이 떠나는 조기유학 체험기]- 여성동아에서 퍼온글최영미 주부가 발로 뛰어 취재한 미국 미시간주 스팔탄 초등학교

“생활 속 교육으로 기초부터 단단하게 쌓아가요”
과연 미국 교육은 우리나라 교육 제도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8살, 6살 아이들과 함께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최영미씨는 미국 교육의 특징을 알아보기 위해 직접 미국 학교를 돌아보기로 했다. 과연 미국 아이들은 어떤 환경 속에서 배우고 생활하는 것일까? 최씨는 앞으로 3회에 걸쳐 미국 학제(초,중,고등학교)를 취재, 자세히 소개할 예정이다. 미시간주 이스트 랜싱시 스팔탄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하여 그가 보고 느낀 미국 교육의 생생한 체험담을 게재한다.(편집자주)

새로운 땅, 새로운 환경에서 사는 일은 참 흥미롭다. 모든 것이 새롭다 보니 새삼 경탄할 일도 많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학교와 도서관, 서점의 규모와 서비스의 질이다. 우리나라에도 삼성동 코엑스몰에 ‘반스 앤 노블’ 서점이 들어와 있지만 이곳의 ‘반스 앤 노블’을 찾았을 때는 그야말로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규모도 규모려니와 고급 주택의 응접실에나 있음직한 푹신한 소파를 여기저기 두고 누구나 부담 없이 앉아서 책을 읽게 한 배려 때문이었다. 하루종일 앉아 있어도 누구 하나 눈치 주는 사람도 없고, 책을 안 사도 그만이다. 이런 서점엔 대개 카페가 붙어 있어서 좋은 커피 향을 즐길 수 있다. ‘반스 앤 노블’뿐만 아니라 미국의 서점들이 대부분 이렇다.

이곳의 지역 도서관을 처음 방문했을 때도 놀란건 마찬가지. 엄청난 분량의 책과 장난감, 컴퓨터 등이 즐비한 어린이 코너는 아기자기한 작은 놀이터와도 같았다. 한 아이가 한 번에 30권의 책을 빌릴 수 있고, 대여기간은 무려 한달. 따로 책을 살 필요가 없을 정도다. 한동안 향수병에 시달리던 나도 도서관을 보고는 처음으로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아이들의 학교다. 이런 말이 조기 유학을 부추기는 게 아닌가 조심스럽지만, 아이들 역시 학교를 즐거운 곳으로 생각하고 학교 생활을 즐긴다. 그래서 이곳을 떠나는 한국 아이들 대부분은 “돌아가기 싫다”며 “엄마 아빠만 가라”고 한동안 떼를 쓴다고 한다.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문제가 많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많은 경비와 복잡한 절차에도 불구하고 미국행 ‘교육 엑소더스’를 감행한다. 미국 교육의 어떤 점이 우리 교육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일까. 과연 우리는 미국 교육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리고 그 실제 모습은 어떤 것일까.



교과서, 준비물이 전혀 필요 없는 학교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미시간주 이스트 랜싱시에 있는 스팔탄 초등학교다. 이 학교는 우리가 사는 대학 내 아파트 단지 안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학교다. 미국의 공립학교는 주 정부의 지원(95%)과 학부모들의 기부금(5%)으로 운영된다. 유학생 자녀가 학생의 대부분인 이 학교의 시설은 사실 다른 주택가에 비해 좋은 것은 아니다. 기부금이 많은 다른 고급 주택가의 학교는 대학을 방불케할 만큼 시설이 좋다. 그럼에도 내 눈에 비친 우리 아이들의 학교도 아주 만족스럽다.

대도시를 뺀 대부분의 미국 학교는 단층 건물로 지어졌다. 따라서 아이들이 계단을 오르내릴 일이 없다. 게다가 굉장히 크고 넓다. 학교마다 도서관, 실내 체육관, 식당이 있는 것은 물론 별도의 미술실, 음악실이 있다. 또 교실도 아주 커서 아이들의 옷과 가방을 걸어두는 방이 따로 있다.

그렇게 큰 교실에 정작 아이들은 20명 남짓. 큰애의 반은 현재 23명이다. 콩나물 시루 같은 모습을 많이 벗어났다고는 해도, 우리나라 교실과는 천양지차다. 이곳 학교는 한 학년이 한 반이다. 교실엔 담임 선생님 외에도 보조 선생님이 있고 아이들의 학습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들도 있다. 이들은 대부분 정년 퇴직한 노인들. 미국의 유치원, 학교, 도서관, 박물관 등엔 이렇듯 정년 퇴직한 노인들이 즐겁게 남을 돕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한국 아이들이 미국 공립학교에 가려면, 부모가 유학생이거나 아니면 기업체 주재원과 같이 F-2비자를 취득한 경우여야 한다. 조기유학으로 올 경우라면 사립학교에 보내야 한다. 미국의 사립학교 수업료는 지역에 따라 또 같은 지역이라도 학교에 따라 각각 다르지만 보통 1년에 5천 달러 이상의 학비를 내야 하며, 점심 값, 스쿨버스 비용을 별도로 내야 한다.

공립학교는 수업료가 없다. 점심 값(한달에 35달러)만 내면 되며, 점심 값 역시 원하면 면제 받을 수도 있다. 이외에 아이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거의없다.

큰애가 한국 초등학교에서 1학년을 다녔을 때 매일 아침 준비물 때문에 씨름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이는 매일 아침 학교 근처 문방구에 들러 뭔가를 사가야 했다. 더러는 아이와 함께 주변의 산을 뒤지면서 나뭇잎, 열매 등 자연 준비물을 구했던 기억도 있다. 그런데 여기는 그런 준비물이 아예 없다. 놀랍게도 교과서조차 없다. 그러니 아이들은 그냥 빈 가방을 메고 다닌다. 선생님이 주는 알림 내용이나 학교에서 빌린 책을 넣어 오는 게 고작이다. 연필, 크레파스, 스케치북까지 그날그날 수업에 필요한 모든 준비물은 학교에서 마련한다. 그러니 아무 것도 준비해갈 게 없다. 또 교실마다 비디오, 교육용 CD, 게임용구 등 각종 교재들이 잘 갖춰져 있어서 아이들은 다양한 학습 경험을 할 수 있다.

아이들 등교시간은 한국 학교처럼 아침 8시 40분이다. 대신 집에 오는 시간은 한국과 다르다. 킨더가든(우리 나라 병설 유치원 같은 곳)부터 6학년까지 학교가 파하는 시간은 오후 3시 40분. 고학년이라고 더 남아 공부하는 법이 없다.

미국의 초등학생들은 학년에 상관없이 모두 수학, 과학, 쓰기와 읽기, 사회, 음악, 미술, 체육, 건강 교육을 받는다. 이 8과목이 공통 과목이다. 학년에 따라 수업 비중이 조금씩 달라지고 내용이 달라지긴 하지만 과목은 이게 전부다.

2학년인 큰아이의 일주일 수업을 살펴보자. 수학과 읽기 수업은 매일 1시간씩 있고 과학이 1시간씩 4일, 사회와 체육이 1시간씩 3일, 미술과 음악이 각각 한 주에 2시간씩 있다. 이외에 매주 컴퓨터 교육과 도서관 이용 교육이 한번씩 있다.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가면 선생님은 일일이 한명 한명을 맞이해준다. 조금 늦었다고 뭐라고 하는 선생님은 거의 없다. 물론 학년이 올라가면 사정은 달라진다고 한다. 고학년이 지각할 경우엔 주의를 듣게 된다. 중·고등학교의 경우 학생이 지각하면 문을 아예 안 열어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저학년에게 있어서 학교는 그저 ‘즐거운 곳’이고 선생님들도 아이들에게 그런 생각을 심어주기 위해 굉장히 애쓰는 눈치다.

재미있는 사실은 오전 9시엔 모든 학생들이 다 자리에서 일어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다는 것.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자유로운 나라인 줄 알았는데 별 걸 다하네!’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말이 국기에 대한 경례이지 우리가 상상하듯 경직된 분위기가 전혀 아니다. 그날그날 뽑힌 아이들은 교장 선생님과 함께 카메라 앞에 서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데, 이 장면이 교실에 있는 TV를 통해 생중계(?)된다. 우리 아이들도 뽑힌 적이 있는데 아이들은 그 TV가 집에 있는 공중파 TV와 같은 것인 줄 알고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봤다고 생각하며 아주 자랑스러워했다. 물론 기회는 모든 학생들에게 균등하게 주어지고 국기에 대한 경례가 끝나면 교장 선생님이 아주 재미난 수수께끼를 내서 아이들을 즐겁게 해준다. 형식적인 절차이기 십상인 국기에 대한 경례조차 이곳 아이들과 선생님은 그렇듯 즐겁게 한다.



선생님 무릎에 앉고, 어깨에 기대서 편안하게 얘기 듣는 아이들

수업 중 유난히 내 눈길을 붙잡는 시간이 있다. 이름하여 클래스 미팅(class meeting). 정규 수업시간으로 일주일에 4번 있다. 이 시간에 아이들은 의자 대신 카펫에 동그랗게 모여 앉는다. 모두들 서로 선생님 옆에 앉으려고 실랑이를 벌인다. 돌아가면서 각자 전날 한 일도 얘기하고 뭔가 특별한 선물을 받은 아이는 그걸 가져와 아이들 앞에서 자랑한다. 내가 방문한 날 한 아이는 리모컨으로 작동시키는 헬리콥터를 가져왔다. 또 다른 아이는 그 전날 집에서 그린 꽃과 나무 그림 3장을, 또 한 아이는 전자 게임기를 가져왔다. 별다르게 보여줄 게 없는 아이들은 그냥 전날 친구와 논 이야기, 할머니와 쇼핑한 이야기 등 아무 얘기나 들려주었다.

아이들이 얘기하는 동안 선생님은 “참 좋은 일을 했구나” 라며 끊임없이 아이들을 칭찬해주었다.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은 집에서 엄마아빠에게 하듯 선생님 무릎에 앉거나 어깨에 기댄다. 어떤 아이들은 선생님 손을 꼭 쥐고는 뭐라고 속삭여대기도 한다.

큰애의 선생님 이름은 키드(Kidd)인데 아이들은 “미스터 키드!”라고 부르면서 마치 친구 대하듯이 편안하게 얘기한다. 아이가 매달리고 응석을 부려도 선생님은 다 받아준다. 물론 이건 저학년이기에 가능한지도 모른다.

미국 교육은 선생님과 아이들간의 긴밀한 유대를 중요시한다. 학교의 모든 선생님과 직원들은 모든 아이들의 이름과 그 아이가 몇 학년인지를 알고 있다. 그래서 모든 선생님과 아이들은 만날 때마다 정겹게 인사를 나눈다. 교장 선생님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아이들은 교장 선생님 방을 수시로 드나든다. 담임 선생님한테 칭찬을 들은 아이들은 교장 선생님에게 달려가 자랑을 한다. 아이들의 등하교시간이면 이곳 교장 선생님은 언제나 문 앞에 서서 아이들을 마중하고 배웅해준다. 더할 수 없이 정겨운 풍경이 정말 부러웠다.

이런 깊은 유대관계는 아이들의 학교 생활을 즐겁게 만든다. “선생님이 무섭다”고 얘기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선생님이 화를 내거나, 벌을 세우는 일 없이도 수업은 문제 없이 잘 진행된다. 물론 이곳에도 수업시간에 떠드는 아이들은 있고, 떠들거나 딴 짓을 한 아이는 벌을 받는다. 그런데 그 벌이란 것이 구석 자리에 가서 혼자 앉아 있는 것이다. 한동안 조용히 앉아 있으면 선생님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 싶게 다시 그 아이를 불러 옆에 앉힌다.

내가 방문한 날 큰애의 담임선생님은 하루 7시간 중 단 4시간만 수업을 했다. 아침시간에 아이들과 미팅을 끝낸 선생님은 아이들이 미술과 체육 수업을 받는 동안 오후에 있을 수학과 사회, 읽기 수업 준비를 했다. 미술, 음악, 체육, 도서관, 영어(외국에서 온 아이들을 위한 별도의 수업) 선생님이 다 따로 있기에 담임선생님은 다음 수업 준비를 여유 있게 할 수 있다.

앞서 얘기했듯이 이곳 학교들은 전부 실내 체육관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비가 오고 눈이 와도 아이들은 운동을 할 수 있다. 이곳 체육관은 마치 신나는 에어로빅장 같다. 아이들이 줄지어 들어오면 체육 선생님은 한명 한명과 일일이 손을 맞잡으며 인사를 한다. 늘 신나는 팝음악이 흘러 절로 신바람이 난다. 이런 분위기에서 아이들은 온몸이 흠뻑 젖도록 운동을 한다.

체육 시간 외에도 아이들은 중간 중간 바깥에 나가 놀이 시간을 갖는다. 눈이 엄청나게 온 한겨울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이들은 선생님과 함께 밖으로 뛰어나가 눈싸움을 했다.

미국 초등학교 아이들은 교과서가 없다. 대체 무얼 가지고 어떻게 배우나 의아스러웠다. 학교 교육하면 으레 교과서와 칠판, 공책 그리고 딱딱한 책상과 의자를 생각하게 되는 내게 교과서가 없는 교육은 상상이 안 됐다. 그런데 미국 학교의 교육 환경을 보면 주변의 모든 게 곧 교과서란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그것도 ‘닫힌 교과서’가 아닌 실제 생활과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교과서’ 말이다.



마을의 실제 생활과 결부된 생생한 체험 학습

봄방학이 끝난 다음 날 아이는 선생님이 줬다면서 예쁜 조개 껍질을 하나 가져온 적이 있다. ‘참 자상한 선생님’이란 생각을 하고 그냥 그 사실을 잊고 지냈다. 그런데 한달쯤 지나서 아이가 가져온 수학 문제를 보고 난 탄성을 터뜨렸다. 선생님이 낸 수학 문제는 그 조개 껍질에 관한 것이다. 즉 ‘선생님이 봄방학 때 해변에 가서 조개를 86개 주워왔는데 나의 친구들에게 23개를 나눠주었다. 그러면 모두 몇 개가 남았을까?’ 이것이 문제였다. 실제로 선생님은 그만큼의 조개를 주워와서 23명의 반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줬다. 아이의 담임은 ‘반 아이들이나 학생들에게’라는 표현 대신 ‘나의 친구들’이란 말을 썼다. 이곳 선생님과 아이들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 문제를 아이는 즐겁게, 그리고 쉽게 풀었다. 실제로 자기가 겪은 일이었으므로 달리 설명이 필요 없었다.

여기 수학은 전부 이런 식이다. 문제를 위한 문제는 없다. 아이들이 실제 경험한 일을 바탕으로 문제를 내기 때문에 아이들은 수학을 실제 생활과 아주 밀접한 과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과학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아이는 거의 한달간 자석(마그네틱)에 대해 배웠다. 서로 당기고 밀고 하는 기본 원리를 가르친 후 마지막 날 선생님은 자석을 멀리해야 할 생활용품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자석 금지 마크를 나눠준 후 집에 있는 용품에 붙이게 한 모양이다. 아이는 집에 오자마자 자신이 배운 대로 TV 등 가전제품에 전부 그 마크를 붙였다. 모든 수업이 이렇게 실제 생활과 연결되어 있다.

사회 과목 역시 마찬가지. 아이들이 직업에 대해 배울 경우 선생님은 아이들로 하여금 이웃 사람들의 직업을 조사해오게 한다. 그리고 그걸 그래프로 그려서 우리 이웃들의 직업 분포도를 알게 한다. 아이가 배우는 모든 것은 작게는 우리가 사는 스팔탄 마을, 또 이스트 랜싱 도시, 미시간 주와 관련이 있다. 학년이 올라가면 그 영역이 넓어진다. 2학년인 우리 아이가 스팔탄 마을을 중심으로 사회 과목을 배운다면 4학년인 아이들은 미시간주 박물관을 1주일간 방문해서 미시간 역사를 배우고 6학년은 동부 서부, 그리고 세계 역사를 배운다.

내가 만난 4학년 아이들은 미시간주 박물관에 머물면서 미시간 역사에 대해 공부를 한 덕분에 이곳 역사에 관한 한 어느 어른 못지 않게 풍부한 상식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가능한 건 교실 안에 갇힌 교육이 아닌, 바깥 세상을 향해 열린 산 교육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든 교육이 현실과 연결되어 있으니 암기가 필요없다. 암기 위주의 교육에 젖어 있는 내게 이 사실은 부럽다 못해 질투심이 날 정도다. 그래서 이곳에서 미국 교육을 받는 한국 아이들은 다음과 같은 하소연을 한다. “수업이 쉬운 기초 단계일 때는 한국에서 교육 받은 아이들이 두각을 나타내지만 내용이 깊어지면 이곳 아이들을 따라갈 수 없다”고. 특히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야 하는 공부에 관한 한 한국 아이들은 곧잘 한계에 부딪힌다고 했다.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수학 시간에 그냥 문제를 풀게 하지 않는다. 수학과 관련한 재미있는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다양한 얘기를 들려준다. 처음에 난 그 시간이 읽기 시간인 줄 알았다. 내가 한국에서 받아온 교육과 내 아이들이 한국에서 받은 교육 방식을 생각하면 분명 그 시간은 수학시간이 아닌 듯 보였다. 수학하면 선생님은 으레 칠판에 문제를 잔뜩 쓰고, 학생들은 끊임없이 공책에 뭔가를 받아 적던 그런 분위기가 전혀 아니다.

한국 교육에 익숙한 나의 눈엔 이곳의 모든 수업이 수업 같지 않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이들은 매트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채로 선생님의 얘기를 듣는다. 공책에 뭔가 열심히 받아 적는 아이도 없고 칠판에 뭔가를 적는 선생님도 없다. 그냥 모든 수업이 옛이야기를 들려주듯, 물 흘러가듯 그렇게 진행된다. 그날 배운 내용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그런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모든 과목의 기초 개념이 차곡차곡 아이들의 머릿속에 쌓여가고 있었다.



기초 개념부터 튼튼히 확실하게 다져주는 교육

모든 학년이 우리 아이의 학급처럼 수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곳 학부모들 얘기에 의하면 4학년만 되면 수업도 엄격하게 진행되고 또 매일 해야 하는 숙제도 많다고 한다. 숙제는 학생 개인이 하는 것도 있지만, 공동 작업이 훨씬 많다고 한다. 지역 사회에 대해 함께 연구하고 그것을 반 아이들 앞에서 발표하게 하는 식이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는 동안 아이들의 실력은 놀라울 정도로 향상된다.

3학년까지는 대체로 숙제에 대한 부담이 거의 없이 공부하는 분위기다. 우리 아이의 경우 1주일에 한 번 받아쓰기를 하고 수학 문제를 한다. 그 분량은 10분이면 할 수 있는 양이기에 아이는 별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여기에 와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거의 밖에서 살다시피 한다는 것이다. 한국과 달리 이곳은 사교육이란 게 거의 없다. 있다고 해야 예체능 교육이 전부다. 그나마 많은 아이들이 경쟁적으로 하는 분위기가 아닌 덕분에 나 역시 마음 편하게 두 아이 모두 학교에만 보낸다. 그 점에서 아이들이나 나나 아주 편안하다. 아이들은 이 학원 저 학원으로 시달리는 일 없이 학교만 갔다 오면 실컷 놀 수 있다.

그 대신 이곳 아이들은 끊임없이 책을 대한다. 교과서는 없지만 아이들은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책을 늘 접한다. 선생님들이 매일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있다는 건 여간 좋은 일이 아니다. 매일 한권 씩만 읽어도 일 년이면 몇 권인가. 담임 선생님뿐만 아니라, 도서관 수업 시간에도 도서관 선생님은 일단 좋은 책 한 권을 읽어주는 것으로 수업을 시작하고, 또 미술 선생님도 재미있는 동화책을 읽어주고 거기 나오는 내용을 그리게 한다.

또 학교는 한달에 한번 ‘책 읽는 밤’ 행사를 마련한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책과 베개를 가지고 학교 체육관에 가서 자유롭게 책을 본다. 가끔 유명한 작가나 구연 동화를 하는 사람이 와서 애들에게 맛깔나게 책을 읽어주기도 한다.

학교 밖을 나가도 마찬가지다. 이곳 엄마들은 매일 밤마다 침대 머리에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지역 도서관은 또 그들대로 수시로 책과 관련된 행사를 한다. 이곳 아이들은 수 많은 책에 둘러싸여 생활하고 있다.

5월이 지나면서 이곳의 낮 시간은 아주 길어졌다. 아이들이 모두 잔디밭 곳곳에서 뛰어논다. 아이들이 신나게 뛰고 구르며 내는 웃음소리가 더없이 좋다. 문득 아이들이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바쁘게 다녀야 하는 탓에 텅 비어 있는 한국의 동네 놀이터가 떠올랐다.




현지인터뷰

“매일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건네 마음을 열지요”

스팔탄 초등학교 아이들이 등하교시간에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은 바로 교장인 윌리엄 게일(54)이다. 그는 교문 옆에 서서 아이들이 들어올 때마다 문을 열어주고 “굿 모닝”하며 인사를 건넨다.

그의 방은 늘 열려 있다. 아이들은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으면 교장실로 달려가 자랑을 한다. 또 아이들이 심한 장난을 쳤을 때도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을 교장실로 보낸다. 그러면 게일씨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들을 타일러 잘못을 깨우치게 만든다. 늘 미소를 띠고 있는 그에게서 권위주의적인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민주사회의 성숙한 시민을 길러내는 일이야말로 미국 공교육의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어려서부터 필요한 정보를 선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일을 결정하도록 훈련시키죠. 정보의 습득과 정확한 의사결정, 민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몸에 배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지요.”

28년간 교직에 몸담아 온 게일씨가 교장이 된 건 5년 전의 일이다. 그 전엔 초·중학교의 과학, 수학 과목을 맡아서 가르쳤다. (미국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사는 겸직이 가능하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킨더가든에서 중학교까지 학교를 옮기면서 다양하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고 한다.)

게일씨는 오랜 교직 경험을 통해, 학생과 선생님과의 깊은 유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무슨 이야기이든 할 수 있는 분위기 속에서 신뢰가 싹튼다는 것. 그 스스로 이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문 앞에 서서 아이들에게 매일 말을 건다고 했다.

“선생님이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면 아이들은 마음을 열지요.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의 강한 유대감보다 더 좋은 활력소는 없다고 봅니다.”

이와 더불어 그가 중요시하는 것은 책임감과 현명한 선택, 그리고 평생 배우는 자세다. 무언가 잘못했다면 즉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할 수 있는 자세,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일들을 스스로 판단해서 우선 순위를 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 평생 끊임없이 배우겠다는 마음가짐 이 세가지를 늘 아이들에게 주지시킨다고.

교장실 안에 앉아 있기보다는 선생님들을 도와주는 보조 교사 역할을 자청하기도 하는 게일씨의 모습을 통해 민주적이고 자발적인 미국 교육의 한 면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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